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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없음을 있음으로 만드는 마술이다. 우주와 그 안에 존재하는 만물들은 사랑을 통해 존재하게 됐다. ‘무’라는 상태는 사랑의 부재다. 사랑이 없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무슨 일을 발생시키기 위한 원초적인 힘이 사랑이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 간의 끌림은 절대적이다. 그 끌림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할 정도로 위험하다. 사랑에 빠진 동물은 자신도 몰랐던 이 힘의 포로가 돼 사랑을 위해 기꺼이 순교할 준비가 돼 있다. 사랑은 인간이 지닌 가장 위대한 감정이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창의성의 어머니다.

에로스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인 헤시오도스는 《신통기》(기원전 700년)에서 가장 원초적인 사랑을 ‘에로스’로 표현했다. 에로스는 혼돈(카오스), 땅(가이아), 심연(타르타로스)과 함께 우주를 탄생시킨 주역이다. 고대 그리스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는 《새》(기원전 400년)라는 작품에서 태초를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태초에는 혼돈, 밤, 어둠 그리고 심연이 있었다. 땅, 공기 그리고 하늘은 존재하지 않았다. 첫 번째로 검은 날개를 지닌 밤이 균이 없는 알을 어둠의 무한한 깊음에 낳았고, 이것으로부터 폭풍우의 소용돌이처럼 날쌘 금빛 날개를 가진 우아한 에로스가 탄생했다. 에로스가 깊은 심연에서 자신처럼 날개를 가진 어두운 혼돈과 짝을 이뤄 우리 인종(인간)을 낳았다. 인간은 빛을 본 첫 존재들이다


우리는 이 원초적인 에로스를 어떤 대상에 대한 육체적이고 열정적인 감정으로만 알고 있다. 초기 그리스도교는 신의 사랑을 강조하기 위해 우주 탄생의 원초적인 주역 에로스를 인간 간의 사랑으로 축소시켰다. 그리스도교인들은 사랑을 그 대상에 따라 다음의 네 종류로 구분했다. ‘에로스(eros)’는 타인을 향한 열정적이고 육체적인 사랑, ‘스토르게(storge)’는 가족 구성원 간의 정신적인 사랑과 관심, ‘필리아(philia)’는 에로스 단계로 넘어가지 않는 친구 간의 우정, ‘아가페(agape)’는 신이 인간에게 보여준 욕심 없는 절대적이며 헌신적인 사랑이다. 에로스는 인간이 지닌 ‘자아’라는 알량한 섬에서 자신을 탈출시켜 위험한 바다로 항해하게 만드는 돛단배다. 망망한 바다는 위험을 통해 인간을 훈련시키는 거룩한 신비다.

향연

소크라테스는 비극작가 아가톤에게 에로스가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것인지 혹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 묻는다. 그러자 아가톤은 힘찬 목소리로 “에로스는 진실로 존재한다”고 대답한다. 그의 대답은 놀랍다. 왜냐하면 그는 ‘에로스’란 물건을 본 적이 없어 알지 못하지만 그것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에로스는 신과 인간을 구분하는 매개자이자 인간을 신적인 존재로 만드는 가치다. 소크라테스는 그에게 무엇을 기억하라고 요구한 것인가?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기억할 수 있는가? 에로스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경지에 있는 어떤 것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에로스에 대한 예의는 이것이다. 인간은 사랑을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항상 상기하는 것이 사랑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소크라테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예를 들어 에로스의 본질을 설명한다. 에로스의 어머니는 ‘페니아’, 즉 궁핍(窮乏)이고 그의 아버지는 ‘포로스’, 즉 자원(資源)이다.

사랑의 어머니가 궁핍인 이유는 사랑은 항상 가난하기 때문이다. 사랑의 아버지가 자원인 이유는 사랑은 언제라도 생존해 자족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은 당황하지 않는다. 사랑은 부자도 아니고 당황하지도 않기 때문에 지혜와 무식의 중간에 있다. 사랑은 철학자다.

사랑 찬가

하이몬은 자신의 연인이자 사랑이란 거룩한 감정을 일깨워준 안티고네를 공개적으로 돌로 쳐 죽이겠다는 아버지 크레온과 논쟁한다. 크레온은 하이몬을 “한낱 계집에 굴복하는 못난 녀석!”이라고 나무란다. 하이몬은 크레온이 그의 눈앞에서 안티고네를 죽이려 하자 도망한다. 합창대는 아버지이자 테베의 왕인 크레온과 맞선 하이몬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위해 의도적으로 자신의 목숨을 포기하려는 안티고네를 위한 사랑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전쟁에서 정복을 당한 적이 없는 사랑(에로스)이여! 당신은 재물 위로 내려앉는 자이며 처녀의 부드러운 볼 위에서 밤을 지키는 자입니다. 당신은 바다 위를 배회하는 자이며 야생 들판에서, 인간들의 집에서 헤매는 자입니다. 불멸의 존재들(신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당신으로부터 도망할 수 없습니다. 당신을 알게 되면, 분노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사랑이 가진 무시무시한 힘은 생산적이면서 동시에 파괴적이다. 합창대는 그런 에로스를 다음과 같이 찬양한다. “당신은 정의로운 인간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불의로 질질 끌고 가서 결국 파멸시킵니다. 혈육에 분쟁을 일으킨 것도 바로 당신입니다. 그러나 승리는 달콤한 신부의 눈에서 솟아오른, 빛나는 에로스의 소유입니다.” 안티고네는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들 뿐만 아니라, 인간 안의 신적인 천재성을 자극하고 발휘하게 하는 에로스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순교자다.


■기억해주세요

사랑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창의성의 어머니’…사랑의 힘은 생산적이면서 동시에 파괴적이기도
사랑의 어머니가 궁핍인 이유는 사랑은 항상 가난하기 때문이다. 사랑의 아버지가 자원인 이유는 사랑은 언제라도 생존해 자족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은 당황하지 않는다. 사랑은 부자도 아니고 당황하지도 않기 때문에 지혜와 무식의 중간에 있다. 사랑은 철학자다. <한국경제>